[한경에세이] 그들의 손에 총 대신 꽃을

입력 2017-09-11 18:42  

이찬희 <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chanhy65@nate.com >


그의 아버지는 안과 전문의였다. 8주의 군사훈련만 받으면 공중보건의로 편안한 군생활이 보장됐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고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할아버지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아니었지만 아들의 신념과 선택을 존중해 군복무를 설득하지 않았다. 당시 할아버지는 현직 부장검사였다.

두 사람의 아들이자 손자는 어린 시절부터 군대 대신 감옥에 가는 주변 형들을 보면서 자랐다. 철이 들어 그것이 잘못됐음을 밝히고자 사법시험에 도전해 변호사가 됐다. 청년 변호사 백종건. 그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됐고, 스스로를 변론하다가 징역 1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수감생활을 끝낸 뒤 신념과 생계를 위해 취소된 변호사자격의 재등록을 신청했다.

현행 변호사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변호사는 결격사유에 해당돼 사실상 등록이 거부된다. 양심범이든 파렴치범이든 범죄의 종류를 불문하고 획일적으로 5년 동안 등록을 거부하고 있는 변호사법 제5조는 행복추구권, 직업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법률과 판례 모두 변경될 수 있다.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다수의 지배로 인해 침해될 수 있는 소수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사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법원이 변하고 있다. 2015년 6건, 2016년 7건이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무죄판결이 2017년 들어 8월 현재 26건이나 선고됐다.

국제적으로도 양심적 병역거부 및 대체복무제 도입이 기본적 인권으로 인정되는 추세다. 유엔이 우리 정부에 수차례 인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고 이스라엘이나 대만과 같이 분쟁상황에 처해 있는 국가들도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보다 인권의식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아프리카 국가들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다.

필자는 감내하기 힘든 비난을 받으면서 간통죄 위헌 결정을 받아냈고, 사시 폐지의 최일선에서 싸운 경험이 있다. 간통죄가 폐지되고 우리 사회가 소돔과 고모라로 변하지 않았다. 사시가 폐지됐다고 법조계가 무너지지 않았다.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대체복무제를 마련해 준다고 우리의 국방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찬희 <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chanhy65@nat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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